시각신경생리학이란 무엇인가? (고등학생 이상)

우리는 어떻게 보는가? ‘보는’능력이 어떻게 가능한가? 어떻게 할머니 얼굴을 다른 사람의 얼굴과 구별할 수 있는가? 데카르트나 뉴턴의 저작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오래된 질문들이 의미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으면 다음의 질문을 생각해 보자. 할머니 얼굴을 인간의 얼굴로 인식할 뿐 아니라 다른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얼굴로부터도 구별하고 노여운 표정과 인자한 표정을 인간의 방식으로 식별하는 기계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시각신경생리학(visual neurophysiology)은 눈에서 시작하는 시각신경계가 기능 하는 원리를 탐구함으로써 이러한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하는 유일한 접근법이다.

 

시각신경생리학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시각의 다양한 속성이 초기부터 쪼개져 처리된다는 점을 확립한 것이다. 소리는 청각신경계에 의해서, 시각이 시각신경계에 의해서 독립적으로 처리되듯이, ‘식탁 위를 구르는 붉은 사과를 볼 때, 사과의 붉은 색, 사과의 둥근 형태, 움직임의 속도와 방향 등이 각각 독립적인 신경 회로에 의해서 처리되는 것은 이제 와서 당연한 듯이 보인다. 따라서 ‘식탁 위를 구르는 붉은 사과’라는 통합된 지각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쪼개져 처리된 시각의 속성들이 결합되는 과정이 요구되는데 어떠한 기전으로 이러한 결합이 이루어지는지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글은 시각의 여러 속성 가운데서 형태를 식별하는 생물학적인 과정과 관련하여 현재의 이론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포유동물의 시각신경계는 망막(retina)에서 시작하여 뇌의 외슬체(lateral geniculate body)를 거쳐서 시각 피질(visual cortex)로 연결되는 여러 단계의 신경 세포들로서 이루어진다. 머리 뒷부분에 위치하는 시각피질에는 여러 시각 영역들이 있는데 첫 단계인 제1차 시각피질은 외슬체의 세포를 통해서 망막으로부터 기원하는 영상 신호를 전달받아 여타 시각 피질 영역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각 단계는 정보를 단순히 중개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들을 분산, 수렴, 흥분, 억제하는 소위 ‘처리’ 과정을 통해서 입력되는 정보를 변환하여 다음 단계로 출력한다. 그러므로 특정한 빛의 분포에 대해서 각 단계의 신경세포들 각각이 보이는 반응을 분석하면 각 단계에서 일어나는 ‘처리’ 과정을 해석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 시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의 시각신경생리학이 추구한 전략이 바로 이러한 분석적인 접근이었다.

 

눈은 광학적으로 입력되는 영상을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전기 신호의 형태로 바꾸는 에너지 변환 장치를 포함한다. 이 신호 변환은 안구의 뒷부분을 구성하는 망막에서 이루어지는데 망막을 구성하는 신경 세포들은 영상을 구성하는 빛의 분포를 망막의 방식으로 표현하여 시신경을 통하여 뇌로 전달한다. 한 눈에 약 백만 개의 케이블로 구성되는 시신경 다발이 전달하는 신호를 보면 눈이 묘사하는, 그리하여 뇌가 전달받는 세계의 모습이 어떠한 지를 알 수 있는데 1953년 하버드대의 스테판 쿠플러 (Stephan Kuffler)가 보고한 연구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마취, 마비시킨, 그렇지만 눈을 뜨고 있는 고양이의 정면에 있는 스크린에 조그만 빛을 여기 저기 비추면서 시신경 다발 가운데 하나를 미세 전극으로 분리하여 그 활동을 기록하였다. 실험의 결과에 의하면 각 시신경은, 망막의 특정 위치의 국부적인 빛의 밝기와 그 바로 주위의 국부적인 빛의 밝기와의 차이에 비례하는 신호를 뇌로 전달한다. 즉, 공간의 각 지점의 빛의 대조(절대적인 밝기가 아닌)에 관한 정보가 대응하는 망막의 각 지점에 연결된 시신경들을 통해서 뇌에 전달된다. 따라서 망막이 보는 세계는 점으로 쪼개진 공간의 빛의 분포에 관한 이른바 점묘법으로 기술된 것이며 이를 뇌로 전달한다.

 

1960년대 노스웨스턴대학의 엔로스-쿠겔과 롭슨(Enroth-Cugell & Robson)은 세계에 대한 망막의 기술이 동질적이 아님을 밝혔다. 이들은 쿠플러의 실험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여 마취 마비된 고양이의 시신경의 활동을 탐지하면서 각 시신경이 ‘보고 있는’ 공간의 위치에, 빛의 분포를 시공간적으로 변화시킨 패턴(drifting sine-wave grating)을 제시하여 시신경의 활동을 유발하였다. 그 결과 이러한 패턴에 대한 반응을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는데, 망막의 X-세포는 빛의 공간적인 분포에 반응하는데 반해서 Y-세포는 빛의 분포의 시간적인 변화에 관한 정보를 뇌로 보낸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Y-세포는 X-세포의 묘사에 비해서 덜 자세하지만 물체의 운동에 관한 정보는 훨씬 효율적으로 탐지한다. 색채 정보는 동물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X-세포에 의해서 처리되기도 한다.

 

망막이 전달하는 정보로부터 형태를 인식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공간주파수(spatial frequency) 분석이론’과 ‘위계적 특징 탐지(hierachical feature detection)이론’이 제안되어 왔다. 형태의 인식 과정이 아직도 이론으로 남아 있는 것은 망막의 여러 세포들이 기술한 세계가 인식에 기여하는 방식에 관해 완전한 이해가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푸리에 분석’에 입각한 영상의 공간 주파수 분석 이론은 영상을 이루는 공간 주파수별로 각각 다른 분석 채널이 존재하여 영상 처리가 이루어지는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는 반면, 1962년 휴벨(David Hubel)과 위젤(Torsten Wiesel)에 의해서 제안된 ‘위계적 특징 탐지 이론’은 망막에서 전달된, 점묘된 영상에 기초하여 영상을 구성하는 윤곽의 기울기, 모서리의 각도 등의 국부적인 특징이 추출되어 통합되는 과정에 의해서 형태의 인식이 이루어지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여기서는 보다 많은 생물학적인 증거에 의해서 지지되고 있는 위계 이론을 다루겠다.

 

망막과 외슬체의 세포들의 반응 특성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한 점의 빛에 의해서 반응이 증가하거나 혹은 감소하는 선별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반해서 시각피질의 세포는 놀랍게도 망막이나 외슬체의 세포들이 주목하는 점의 빛으로는 반응이 변하지 않으며 직선으로 이루어진 빛의 대조에 의해서 반응이 유발된다. 뿐 아니라 시각 피질의 각 세포들이 선호하는 빛 선의 기울기는 세포에 따라서 다르다. 이를 ‘기울기 선호(orientation selectivity)’라 한다. 외슬체를 통해서 전달받는 점묘법에 기초한 영상의 묘사를 시각 피질이 변환하여 영상의 어떤 부분이 어둡고-검은 가장자리를 지니는지, 그리고 가장자리의 기울기가 어떠한지를 분석하고 있는 셈이다.휴벨과 위젤은 기울기 선호성을 최초로 기술하였으며 이 업적으로 1982년에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이들은 기울기 선호성이 생성되는 과정을 포함하여 형태 지각의 과정에 관한 소위 ‘위계 이론’을 제안하였다. 휴벨과 위젤의 위계 이론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망막-외슬체-시각 피질의 단계를 구성하는 세포들은 영상의 국부적인 특징을 탐지하는 특징 추출기들로서 작용하는데 세포의 반응에는 단계간에 흥분적인 연결이 있어서 망막이나 외슬체와 같이 초기 단계의 세포들은 영상의 빛 점처럼 간단한 특징을 추출하는데 반해서 후기 단계에 이를수록 세포는 빛 선, 모서리, 등의 점점 복잡한 특징을 추출하게 된다. 기울기 선호성을 보이는 시각 피질의 세포들에도 위계적인 단계 구별이 가능한 ‘단순 세포’와 ‘복합 세포’ 등이 있어서 외슬체 세포들의 흥분적인 수렴에 의해서 단순세포의 특성이 생성되고 여러 단순세포의 흥분적인 수렴에 의해서 복합세포의 특성이 생성된다. 뿐 아니라 제1차 시각영역은 단순 세포와 복합세포로 구성되는데 반해서 제2차 시각 영역에는 단순세포는 없고 복합세포와 초복합세포들이 발견된다.

 

휴벨과 위젤은 결코 언급한 바 없지만, 위계 이론을 극단적으로 확장해 보면 고등 시각 영역에는 할머니에 ‘부합’하는 영상에 대해 선별적으로 반응하는 세포, 즉 할머니의 얼굴이 제시될 때에만 활동하는 ‘할머니 탐지기’가 있어서 이 세포가 활동하게 될 때 우리가 경험하는 의식적인 내용이 바로 할머니 얼굴의 인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원숭이의 고등 시각 영역에 있는 ‘얼굴 탐지기’, ‘손 탐지기’ 세포들은 얼굴의 형태, 혹은 손의 모양에만 선별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이러한 세포들이 극단적인 위계적 특징 탐지 이론을 지지하는 증거로서 해석되기도 한다.

 

위계 이론 이후 이를 지지하는 증거들이 보고되어 왔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지지 증거가 한국인을 포함한 연구팀에 의해서 최근에 제시되었다. 위계 이론의 핵심적인 두 부분 가운데 첫 부분, 즉 단순세포의 기울기 선호성이 외슬체 세포들의 흥분적 수렴으로 생성된다는 명제가 최근에 노스웨스턴대학의 퍼스터(David Ferster), 정수영, 그리고 휘트의 실험에 의해서 보다 강력히 지지되었다 (Nature, 380: 249, 1996). 이들은 시각피질을 냉각하여 피질의 세포들의 활동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킴으로써 피질세포들 간의 상호작용을 차단한 상황에서 단순세포의 기울기 선호성이 정상적으로 유지됨을 보였다. 이 결과는 외슬체의 흥분적인 수렴이 기울기 선호성을 생성하는 충분조건임을 보인 것이다.

 

위계 이론을 지지 증거 못지 않게 배척하는 증거들도 보고되어 왔다. 예를 들어, 일리노이 대학의 말펠리 (Joseph Malpeli)는 제1차 시각영역의 단순세포의 활동을 실험적으로 마비시킨 후에도 복합세포의 활동이나 기울기 선호성은 여전히 정상을 유지함을 보임으로써 단순세포-복합세포 간의 위계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이들 간에 위계적 관계를 보일 수 있는 우회적인 해부학적인 경로가 존재할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생명과학의 명제는 증명이나 반증의 대상이 아니다. 명제의 옳고 그름은 통계적인 것이며 실험적으로 얻어진 증거가 기존의 명제에 얼마나 가까운가 혹은 경험적으로 얻어진 자료에 비추어 볼 때 기존의 명제를 채택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얼마나 오류인가를 생각하는 과정이 연구의 일상일 것이다.

 

형태 지각을 설명하는 공간 주파수 분석(spatial frequency analysis)과 특징 탐지(feature detection)의 두 이론 외에도 형태가 인식되는 다른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이들 이론이 기반하고 있는 생물학적인 증거들은 대체로 안구 운동이 마비된 상태의 동물에서 정지된 영상을 사용하여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안구의 운동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영상 정보의 내용과 관련하여 안구 운동의 효과는 고려되고 있지 않아서 실제 진행되고 있는 형태 인식 과정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최근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여, 각성 상태에서 안구를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동물을 사용하는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완전히 깨어 있는 원숭이나 고양이가 지각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에 동물의 시각 신경계를 구성하는 신경 세포의 활동을 탐지하여 지각 과제와 상관시키는 실험들이 시각 과정을 이해하는 궁극적인 방법일 것이다. 이러한 실험들이 현재 시각신경생리학의 주된 흐름이다.